휘날리는 점획의 활력적인 붓질과 시커먼 먹빛으로 사나워 보이는 돌덩이를 대담하게 그린 '괴석' 대련은 민영익이 '죽동궁 주인'으로 불리던 20세 전후의 작품이다. 젊은 민영익의 기세등등한 권세를 필묵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민영익의 집안은 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가세가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인척인 고종비 명성황후 민씨(1851~1895)가 권력을 잡으면서 아버지 민태호와 숙부 민규호가 벼슬길에 올랐고 집안이 피기 시작했다. 외아들이던 민영익은 16세에 명성황후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황후 친정의 제사를 받드는 조카이자 고종의 외사촌이 됐고, 순식간에 민씨 외척 세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아버지와 숙부가 진외가 당숙인 김정희 문하에서 글씨를 배운 덕에 서예의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글씨도 잘 썼다.
19세 때 민영익은 소치 허련(1808~1893)을 죽동궁 사랑채에 머물게 하며 그림을 그리게 했다. 명성황후의 총애 속에 18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정3품 당상관인 이조참의로 조정의 인사권을 쥔 때였다. 권력의 정점에서도 붓을 놓지 않을 만큼 서화를 사랑했다. 김정희의 애제자인 노대가 허련을 융숭히 대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이 차가 50여 년에 이르고 신분도 하늘과 땅 차이며 필묵의 개성도 매우 달랐지만, 농담의 짧은 터치를 중첩해 수직으로 높이 솟은 괴석을 땅 위에 심은 듯 그린 방식에는 허련의 영향이 보인다.
그 허련의 '괴석도' 두 폭이 2026 광주비엔날레 제3전시실에 나왔다(11월 15일까지). 진도 출신인 허련은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작품 활동과 여행으로 만년을 보냈다. 운림산방은 호남 남종화의 진원지가 됐고, 허씨 집안에서 화가가 잇따라 나오며 순수미술의 저변을 넓혔다.
올해 31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허련과 운림산방으로부터 200여 년을 이어온 김정희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2026년 주제는 릴케의 시구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다. 김정희가 서예 혁신을 이룬 방법론은 고전의 바다로 들어가 자신만의 면목으로 나오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이었다.

